“ 나는 작품을 읽는 것 만큼 느끼기 원한다. ”
–줄리 머레투, Art21 2008 인터뷰 中

줄리 머레투 (Julie Mehretu)
1970년,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출생
지리, 도시계획, 정치적 정체성
회화, 드로잉, 판화 등을 넘나들며
동시대의 복잡한 권력 구조와 사회적 기억을 탐색하는 현대미술의 선구적 작가

줄리 머레투는 지도, 건축도면, 디지털 이미지의 파편을 추상화하는 회화언어로 세계화 이후의 도시성과 정체성, 권력의 구조를 탐색해온 에티오피아 출신 미국 작가다. 정치, 도시, 이주, 기억이라는 동시대의 키워드를 회화적 공간 안에서 재조직하는 그녀의 작품은, 선·색·기호가 충돌하고 중첩되며 ‘사회적 풍경(Social Landscapes)’을 창출한다.
1970년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태어난 머레투는, 1977년 내전을 피해 가족과 함께 미국 미시간주로 이주했다. 칼라마주 대학(Kalamazoo College)을 졸업한 뒤, 세네갈 UCAD에서의 연수를 거쳐,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RISD)에서 회화 석사 과정을 마쳤다. 뉴욕에 정착한 이후, 할렘 스튜디오 뮤지엄의 레지던시(2000)를 시작으로 국제적 활동을 본격화했다.
그녀의 회화는 전통적 추상의 계보 위에 있지만, 정치적 추상화(Political Abstraction)라 불릴 만큼 사회적 현실과 직결되어 있다. 항공지도, 위성사진, 건축도면 등을 디지털 이미지와 손의 선묘로 결합해, 이주, 반란, 식민지배, 자본주의의 불균형 구조, #BlackLivesMatter, 아랍의 봄 등 지구적 혁명의 코드를 대형 캔버스에 암호화한다.

그녀는 “회화는 질문을 던지는 장소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사유하게 하는 창”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철학은 단지 개인의 서사에 머물지 않고, 흑인·여성·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의 교차점에서 공공의 기억과 공동체의 상처를 시각화하는 작업으로 확장된다.
줄리 머레투는 맥아더 ‘천재상’(2005) 수상자이자, 뉴욕 골드만삭스 타워(2009)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2017)에 대형 벽화 작업을 설치하며 회화의 공공성과 물리적 확장을 추구해왔다. 휘트니 비엔날레(2004), 베니스 비엔날레(2019), 도쿠멘타13(2012), 시드니 비엔날레(2006) 등 주요 국제전에도 꾸준히 참여해 왔다.
2020년에는 타임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되었고, 2025년 소더비는 그녀를 가장 영향력 있는 동시대 작가 중 하나로 꼽았다. 경매 시장에서도 작품은 수백만 달러에 거래되며, 예술적 가치와 사회적 메시지, 시장성을 모두 갖춘 작가로 평가받는다.
◈ 최근 주요 활동

- 2024 – 《Of Context and Collapse》, White Cube, 런던
- 2024 – 《Architectures of Disappearance》, 함부르거 반호프 국립현대미술관, 베를린
- 2024 – 《Wild: Women Abstractionists On Nature》,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마닐라
- 2023 – 《Fragmented Futures》, 휘트니 미술관, 뉴욕
2024년 런던 화이트 큐브(White Cube)에서 개최된 개인전 《Of Context and Collapse》는 줄리 머레투가 추상 회화로 구축해온 정치적 풍경의 극점을 보여주는 전시였다. 붕괴(collapse)의 형상화와 맥락(context)의 해체는, 그녀가 수년간 탐구해온 이주·폭력·기억의 주제를 더욱 심화된 회화적 언어로 풀어낸다.
같은 해, 베를린 함부르거 반호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 《Architectures of Disappearance》는 디지털 지도, 뉴스 이미지, 기호체계 위에 축적된 시간성과 감정을 시각적으로 해석한 대형 캔버스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회화가 단지 시각적 결과물이 아닌 기억과 저항의 지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전시였다.
2023년 휘트니 미술관의 《Julie Mehretu: Fragmented Futures》는 기술·정치·도시적 풍경이 해체되는 과정을 선묘와 색면으로 구성한 대작들을 통해, 작가가 현재의 불안정한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감각화하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이 전시는 머레투가 ‘미래의 단면’을 어떻게 회화적으로 예측하고 제시하는지에 대한 사유의 장이기도 했다.

2022년 파리의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에서 열린 《An Atlas of Events》는 회화가 정보, 기호, 감정을 아우르는 ‘사건의 지도’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작업이었다. 이 전시는 디지털 기반의 시각 언어와 회화적 제스처의 결합을 통해 추상화의 확장 가능성을 선보였다.
이와 같은 활동을 통해 줄리 머레투는 동시대 미술의 윤리적·정치적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지는 작가로 자리매김했으며, 2025년 소더비 뉴욕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동시대 작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 대표 전시 및 활동 이력
- 2024 – 《Of Context and Collapse》, 화이트 큐브(White Cube), 런던
- 2024 – 《Architectures of Disappearance》, 함부르거 반호프 국립현대미술관, 베를린
- 2024 – 《Wild: Women Abstractionists On Nature》,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마닐라
- 2023 – 《Fragmented Futures》, 휘트니 미술관, 뉴욕
- 2023 – 《Lesser Numerator》, White Cube, 런던
- 2022 – 《An Atlas of Events》, Palais de Tokyo, 파리
- 2021 – 《Julie Mehretu》 회고전, 휘트니 미술관, 뉴욕
- 2019 –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
- 2017 – 《HOWL, eon (I, II)》,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 위임 제작
- 2006 – 《시드니 비엔날레》 참가
- 2004 – 휘트니 비엔날레(Whitney Biennial) 참가
- 2003 – 제1회 베이징 국제 미술 비엔날레, 중국국립미술관
1. Julie Mehretu (2021)

《Julie Mehretu》는 줄리 머레투의 25년에 걸친 예술 여정을 집대성한 회고전이자, 동시대 추상 회화가 도달한 정치적 감수성과 조형적 실험의 최전선을 보여주는 압축된 풍경이다. 본 전시는 휘트니 미술관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의 공동 기획으로 진행되었으며, 1996년부터 2021년까지 제작된 주요 회화, 드로잉, 판화 등 70여 점이 뉴욕 휘트니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전시는 도시계획도, 건축 도면, 지도 등 기능적이고 냉정한 시각 정보 구조 위에 작가의 감정과 기억이 중첩되는 회화 구조를 중심에 둔다. 특히 ‘Black City’(2007), ‘Mogamma’(2012), ‘Stadia’(2004~2010) 등의 대형 캔버스는, 추상적 언어로 재구성된 도시의 정치적 해부학이자, 감정의 운동성으로서의 회화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작가의 회화는 공간과 시간을 해체하고, 기억과 분노, 이동과 경계를 시각화하는 정치적 지도이자 감정의 지형도이다.
이번 회고전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HOWL, eon (I, II)>는 무채색의 짙은 레이어 위로 격렬한 붓질과 기하학적 형상이 뒤섞이며, 미국 정치사와 흑인 공동체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터져나온 집단적 외침(howl)의 회화적 메타포로 기능한다. 이 작업은 벽화를 구성하듯 관람자의 시선을 좌우로 밀어내며, 감정과 정보가 동시적으로 폭발하는 시각적 서사를 만들어낸다.
특히 본 전시에서는 디지털 이미지와 손의 제스처, 정치적 현실과 회화적 은유, 정보의 층위와 감정의 진동이 한 화면 안에서 복합적으로 얽히는 머레투의 회화 언어가 집중적으로 조명된다. 각 작품은 불완전한 도시, 이주, 인종 갈등, 식민지 잔재, 기후 변화 등 지구적 현상에 대한 시각적 응답이며, 선 하나, 점 하나가 거대한 서사와 충돌하는 **정치적 추상의 장(場)**으로 작동한다.
《Julie Mehretu》는 회화라는 장르가 개인의 표현을 넘어 어떻게 공공의 기억과 집단적 감정의 보존 매체가 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회화는 여기서 사유의 장이자, 질문의 무대이며, 시각 언어의 정치적 실천이다. 줄리 머레투는 이 회고전을 통해, 추상이 결코 도피적 장르가 아님을, 오히려 가장 복잡한 현실의 진실을 품을 수 있는 구조임을 입증해낸다.
이 전시는 단지 작가의 과거 작업을 되짚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회화가 지속적으로 미래의 감각을 호출하는 방식을 탐색하는 전방위적 실험이었다. 《Julie Mehretu》는 지금, 이 세계를 직시하는 가장 격렬하고도 정교한 회화적 응시로 기억된다.
2. 제 58회 베니스 비엔날레 (2019)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는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가장 민감하게 포착하는 무대로, 줄리 머레투(Julie Mehretu)는 그 가운데서도 정치적 추상화라는 독자적 회화 언어로 국제적 주목을 받아왔다.
그녀는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2019)에 초대되어, 기억, 권력, 도시, 폭력을 추상이라는 장르로 해부하는 회화적 실험을 선보였다.
머레투의 출품작들은 위성지도, 도시 설계도, 뉴스 이미지, 그래픽 기호 등의 시각 언어를 기반으로, 정보와 감정, 폭력성과 내면성이 충돌하는 회화적 레이어를 구현했다. 이는 단지 시각적 구성의 문제가 아니라, 이주와 분쟁, 식민주의, 자본의 불균형이 인간 존재에 남긴 흔적을 추상적으로 증언하려는 시도였다. 특히*<Hineni (E. 3:4)>와 같은 대형 작품은, 무채색 중심의 화면 위에 불안정하게 흐르는 색채와 선들이 교차하며, 도시의 해체와 인간의 정서가 중첩된 심리지리학적 풍경을 구현한다.
줄리 머레투의 작업은 베니스 비엔날레의 국제적 맥락 안에서, 흑인 여성 퀴어 작가로서의 정체성과 글로벌 정치 현실을 교차시키는 드문 회화적 목소리로 기능했다. 그녀의 회화는 추상으로 감정을 구성하고, 기호로 기억을 호출하며, 겹겹이 중첩된 층위를 통해 보이지 않는 권력 구조를 시각화한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그녀의 작품은 특히 “공공의 기억은 어떻게 형성되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회화가 사회적 상흔과 역사적 진실을 감각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는가라는 윤리적 명제를 제시했다. 관객은 단순히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압축된 도시와 분쟁, 정체성과 경계의 흔적을 공간적으로 '마주하고' 걸어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는 머레투의 작업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자, 추상이 단순한 형식적 실험을 넘어서 세계의 불균형과 감정의 정치성을 담아내는 적극적 회화 언어임을 확인시켜준 자리였다. 그녀의 작업은 단순히 동시대의 풍경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면의 균열과 역사적 층위를 드러내는 도구로서의 회화를 제안했다.
줄리 머레투는 이 전시를 통해, 회화가 언어화되지 않은 감정과 시공간의 단층을 읽어내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해냈으며, 베니스라는 국제적 예술 무대에서 비서구 여성 작가로서의 강력한 존재감과 발언력을 유감없이 펼쳐보였다. 이는 추상회화가 동시대의 가장 본질적인 질문들 ― 권력, 기억, 경계, 연대 ― 에 어떻게 응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현대 미술의 중요한 장면으로 남았다.
◈ 수상 경력
- 2001 – The Studio Museum in Harlem Artist-in-Residence 선정
- 2005 – MacArthur Foundation Fellowship (일명 ‘Genius Grant’) 수상
- 2015 – US Department of State Medal of Arts Award 수상
- 2019 – TIME지 선정 ‘The 100 Most Influential People’
- 2021 – American Academy of Arts and Letters 정회원으로 선출
◈ 작가의 대표작
1. Stadia II (2004) - 뉴욕 현대미술관(MoMA) 소장

《Stadia II》(2004)는 줄리 머레투(Julie Mehretu)의 대표적인 대형 회화 중 하나로, 글로벌 정치, 도시의 스펙터클, 집단적 에너지의 형식화를 정면으로 다룬 상징적 작품이다. 이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되어 있으며, 머레투의 추상 회화가 정보와 감정, 권력과 건축이 얽힌 복합적 구조물로 진화한 분기점을 보여준다.
작품은 제목 그대로 ‘스타디움(경기장)’이라는 공간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이곳은 단순한 스포츠 경기장이 아니라, 국가, 이념, 군중, 자본이 충돌하는 현대의 전장이다. 화면 전체를 휘감는 원형의 시선 유도 구조는 경기장의 관중석을 연상시키며, 그 안에서 수없이 분절되고 겹쳐진 색면, 기호, 선들은 국기, 로고, 플래카드, 폭동 현장의 파편 등으로 해석될 수 있는 정치적 기호의 조각들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색면과 선이 마치 군중의 함성처럼 분출되며 폭발하는 회화적 제스처다. 머레투는 이러한 방식으로 권력의 시각 언어가 어떻게 우리의 감각에 각인되는가를 탐구한다. 이는 단지 장식적 구성이나 형식 실험이 아니라, 국가적 서사와 자본주의적 시각문화가 인간의 몸과 공간을 어떻게 조직하는가에 대한 비판적 질문이다.
《Stadia II》에서 중심은 항상 비어 있다. 이는 경기장의 중앙이자, 모든 시선이 집중되지만 정작 아무것도 위치하지 않는 의도적 공백의 공간이다. 머레투는 이 공백을 통해 권력의 중심이 항상 부재하거나 허상일 수 있음을 암시하며, 회화적 중심을 비움으로써 시선을 분산시키고, 회화의 정치적 질서를 흐트러뜨린다.
이 작품은 또한, 줄리 머레투 특유의 '도시적 추상성'과 '디아스포라 감각'이 시각적으로 정교하게 교차하는 장면으로 평가된다. 에티오피아 출신 이민자이자 흑인 여성 작가로서, 그녀는 현대 도시의 구조적 폭력성과 세계화의 불균형을 회화적 언어로 번역하며, 추상이라는 장르가 지극히 정치적일 수 있음을 증명해왔다.
《Stadia II》는 21세기 초 현대 회화가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가늠하게 한 결정적 작업이자, 미술관과 비평계에서 머레투의 위상을 단숨에 끌어올린 작가 경력의 전환점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경기장이라는 은유 속에서 폭력과 환호, 제국과 저항, 시각과 기억이 충돌하는 장소로서의 회화가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지를 묻는 시대적 응답으로 남는다.
2. Mogamma (A Painting in Four Parts) (2012) - 테이트 모던 외 유럽 주요 기관 소장

《Mogamma (A Painting in Four Parts)》(2012)는 줄리 머레투의 대표적인 정치적 회화 연작이자, 공공 공간, 집단 기억, 정치적 풍경의 충돌을 가장 집약적으로 시각화한 작업이다. 총 4점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영국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을 비롯한 유럽의 주요 미술 기관에 분산 소장되어 있으며, 2011년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벌어진 아랍의 봄 혁명과 그 역사적 긴장을 캔버스 위에 담아낸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Mogamma’는 이집트 카이로의 상징적 정부 행정청사 이름으로, 정치적 권력의 중심을 의미함과 동시에, 무수한 관료주의와 억압적 국가 구조의 상징으로 읽힌다. 머레투는 이 공간을 물리적 장소라기보다 기억과 권력, 감시와 해방이 교차하는 메타적 구조물로 재구성하며, 4점의 캔버스를 통해 건축적 질서와 사회적 긴장의 붕괴와 재조립을 그려낸다.
작품 전면에는 도시 설계도, 위성지도, 아랍 문자, 국제 기호 등이 레이어처럼 겹쳐지며, 복잡하게 얽힌 선과 기하학적 구조물들이 시각적 소음과 침묵의 충돌을 형성한다. 특히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시각 요소들이 구체적인 상징 없이 추상화된 형태로 제시되며, 관람자로 하여금 역사의 방향성과 정치의 불확실성을 직감하게 한다.
《Mogamma》는 머레투가 줄곧 탐구해온 ‘공공의 풍경’과 ‘정치적 추상화’ 개념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작업이다. 정보의 과잉 속에서 무엇이 삭제되고 무엇이 강조되는가, 권력의 공간은 어떻게 미학적으로 조직되는가, 기억은 어떻게 시각적 구조로 번역되는가에 대한 질문들이, 화면 곳곳에 균열처럼 뚫려 있는 여백과 층위를 통해 드러난다.
이 시리즈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4점의 캔버스가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하나의 순환 구조를 이루는 구성이다. 이는 단선적인 역사 서사가 아니라, 해체와 반복, 퇴행과 진보가 공존하는 정치적 시간성을 암시하며, 머레투의 회화가 단지 사건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발현되는 공간적 구조 자체를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시도임을 보여준다.
《Mogamma》는 머레투 작업 세계의 전환점이자, 비서구 세계의 정치적 현실을 회화 언어로 정교하게 통역해낸 희귀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 작업은 회화가 건축도면처럼 설계될 수 있으면서도, 시위 현장처럼 격렬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작품이며,
동시대 회화가 정치와 감정, 기억과 지도, 이념과 질서의 교차로에 위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 작품 감상 포인트
1. 충돌하는 질서의 풍경
- 머레투의 회화는 디지털 이미지, 위성지도, 그래픽 기호, 손의 붓질이 겹겹이 중첩되어 구성된다. 이러한 복합적 레이어는 단지 시각적 복잡성을 넘어서, 정보화된 세계와 인간 감정의 상호작용을 은유한다.
2. 비어 있는 중심과 부재의 정치학
- 선과 색은 실시간 도시 감시와 감정의 내면화, 기호의 정치성과 존재의 흔적을 동시에 드러내며, 캔버스는 하나의 감정–정보 복합체로 작동한다. 머레투의 대형 캔버스에서 중심은 자주 비워져 있다. 이 중심의 공백은 단순한 공간적 여유가 아니라, 권력의 공허함, 기억의 결핍, 정체성의 흔들림을 드러내는 장치이다. 화면의 중심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는 대신, 주변부에서 격렬히 뒤얽히는 선과 색이 역동적 긴장을 이끌어내며, 관람자는 무엇이 보이지 않는가를 질문하게 된다.
3. 정보와 감정의 레이어링
- 머레투의 화면은 끊임없이 질서를 구성하고 동시에 그것을 해체한다. 건축 도면, 지도, 도식적 기호들이 겹쳐지며 시각적 구조를 형성하지만, 그 구조는 언제나 붕괴 직전의 상태에 놓여 있다. 이는 도시와 권력, 이념과 집단 감정이 충돌하는 사회의 풍경을 추상적으로 제시하는 방식이며, 관람자는 그 안에서 질서의 파편과 감정의 소용돌이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줄리 머레투의 회화는 거대한 캔버스를 통해, 세계의 구조적 복잡성과 인간 감정의 궤적을 동시에 감각하도록 만드는 장치다.
그녀의 작품을 감상할 때 우리는 단지 회화의 ‘이미지’를 본다기보다, 그 이미지가 담고 있는 시간, 장소, 권력, 기억, 분노, 이주, 생존의 흔적들을 함께 읽어야 한다.
머레투는 에티오피아에서 혼혈로 태어나 7살 때 내전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어린 시절의 이주 경험과, 경제지리학자인 아버지의 영향, 여성·흑인·퀴어 정체성이 중첩된 자전적 배경은 그녀의 회화가 지닌 복잡한 지리성과 심리성을 구성하는 토대가 된다.
그녀는 이 복합적 경험을 단순한 재현이 아닌, 기호화된 추상의 구조로 번역한다. 건축도면, 지도, 위성 이미지, 디지털 그래픽은 그녀의 작품에서 단지 시각적 요소가 아니라, 세계의 권력 구조와 감정의 분산 방식을 상징하는 언어다.
첫째로, 머레투의 작품은 질서와 붕괴가 동시에 존재하는 ‘풍경’을 형성한다.
도시 구조물, 건축 기호, 항공 지도 같은 이미지들이 선과 면, 색채 속에서 파편처럼 흩어지고 중첩되며, 우리는 어떤 공간을 ‘응시’한다기보다, 그 공간이 무너지고 재편되는 과정을 목격하게 된다. 이 풍경은 구체적 장소가 아니라, 세계화된 도시의 무의식, 집단적 저항의 지도, 기억의 뒤엉킨 흔적을 담고 있다.
둘째, 머레투의 캔버스는 ‘비어 있는 중심’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화면의 한가운데는 종종 텅 비어 있거나, 아무런 도상도 배치되지 않은 채 공백으로 남아 있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휴식이 아니라, 권력의 실종, 기억의 공허, 진실의 부재를 은유하는 회화적 장치다.
이 중심을 둘러싸고 폭발하듯 흩어지는 선, 소용돌이치는 기호들은 무언가를 말하려 하지만 끝내 도달하지 못하는 서사, 즉 불완전한 증언의 구조를 형성한다.
셋째, 그녀의 회화는 정보와 감정, 기호와 감각이 중첩된 다층적 구조다.
디지털 지도나 뉴스 이미지처럼 시각적으로 익숙한 구조물 위에, 손의 제스처—붓질, 색의 뭉침, 번짐, 긁힘—이 겹쳐지며, 화면은 언제나 이성적인 기호와 감각적인 흔적 사이의 긴장으로 가득하다.
이러한 레이어링은 추상적 회화라는 형식 안에서 기억, 분노, 해방, 폭력, 불안정성 같은 감정을 실시간으로 호출하는 장치로 작동하며, 관객은 이미지의 형태가 아니라 그 내부의 리듬과 심리적 진동을 감각하게 된다.

줄리 머레투의 회화를 감상하는 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정치적 경험이자 심리적 사유의 과정이다.
우리는 작품 앞에서 단순히 시각적으로 ‘본다’기보다, 사건을 감지하고, 권력을 질문하고, 기억을 추적하고, 세계의 균열에 참여하게 된다.
머레투는 회화를 통해 세계를 진단하고, 회화의 공간을 정치적 폭력과 감정의 찌꺼기를 응축시키는 장소로 전환시키며, 그 안에서 관객을 단지 감상자가 아닌, 동시대 감정의 공공적 목격자로 세운다.

줄리 머레투(Julie Mehretu)는 도시 구조, 권력의 풍경, 디아스포라의 기억을 추상 회화 언어로 변환해온 작가로, 동시대 미술사에서 ‘정치적 추상화의 공간-사유자’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녀는 근대적 도시계획과 전 지구적 사건, 디지털 기호와 개인 감정을 병치하며, 회화를 단순한 표현의 매체가 아니라 역사와 권력의 구조가 발현되는 장(場)으로 탈바꿈시킨다.
머레투의 작업은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부터 월스트리트, 베이징, 마드리드, 아디스아바바에 이르기까지 세계 주요 도시의 집단적 저항과 권력의 흔적을 항공 지도, 건축 설계도, 뉴스 이미지 위에 중첩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녀는 이 과정에서 사이 톰블리(Cy Twombly)의 감정적 붓질, 칸딘스키(V. Kandinsky)의 구조적 리듬, 로버트 라우션버그의 이미지 조각화 등을 자신만의 정치적 감각으로 재조립하며, 비서구 여성 작가로서의 미술사적 개입을 감행해왔다.
줄리 머레투의 회화는 자전적 디아스포라 경험, 흑인 퀴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전 지구적 정치 감각이 중첩된 드문 사례로, 단지 추상화의 기술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힘과 기억을 시각화하는 윤리적 실천이다. 이로써 그녀는 알마 토마스, 프랭크 볼링, 데이비드 해먼스, 잭 휘튼 등과 함께 흑인 추상계보의 중요한 계승자이자 확장자로 평가받고 있으며, 비서구적 사유의 회화적 전환점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미술시장에서도 독보적 입지를 보여준다. 2010년 소더비 경매에서 무제(Untitled) 작품이 1,020만 달러에 낙찰되며, 머레투는 단숨에 가장 비싼 아프리카계 여성 작가 중 한 명으로 부상했다.
이후에도 2014년 아트 바젤에서의 Mumbo Jumbo (2008) 작품이 약 500만 달러에 판매되었으며, 공공 미술 프로젝트로는 뉴욕 골드만삭스 타워 벽화(2009), SFMOMA 대형 벽화(2017) 등도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기록은 그녀의 작업이 단지 미술관 전시에 그치지 않고, 도시 공간과 글로벌 자본의 흐름 속에서 ‘권력과 이미지의 공공성’을 질문하는 작가로 인식되고 있음을 반영한다.
향후 줄리 머레투의 작업은 더욱 비물질적 구조와 사회적 감정이 교차하는 시각적 풍경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그녀의 회화는 도시적 무질서와 권력의 잔재, 감정의 기호와 역사적 상흔을 회화적 시간성과 공간성 안에 응축하며, 단지 조형적 실험이 아니라 사회 감정의 지도화를 향한 회화적 전략을 지속해 나가고 있다.
특히 디지털 이미지와 손의 제스처가 더욱 격렬하게 충돌하는 최근 작업들은, 회화가 여전히 감정의 층위와 권력의 작동 방식을 드러내는 유효한 언어임을 증명하고 있다.
줄리 머레투의 예술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기억은 어떻게 공간이 되는가?”,
“회화는 어떻게 공공의 감정을 조직할 수 있는가?”
그녀는 이 질문들을 회화로 던지고 있으며, 그 답은 여전히 캔버스 위에서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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