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색은 시간 속에서 일어난다. 우리는 그것을 소유하지 않는다. 색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는 하나의 상황이다. ”
–카를로스 크루즈 디에즈, 2011년, MFAH 인터뷰 中

| 카를로스 크루즈 디에즈 (Carlos Cruz-Diez) | ||
| 1923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출생 – 2019년 프랑스 파리 사망 | ||
| 설치, 회화, 공공미술, 색채 연구 | ||
| 베네수엘라, 프랑스, 전 세계 | ||
| 색의 자율성, 지각의 상대성, 키네틱 아트, 옵 아트 | ||
| 뉴욕 현대미술관(MoMA), 런던 테이트 모던, 퐁피두 센터 등 유명기관 작품 소장 |

카를로스 크루즈 디에즈(Carlos Cruz-Diez, 1923–2019)는 색을 고정된 대상이 아닌 ‘변화하는 사건’으로 재정의한 개념미술가이자, 20세기 후반 옵 아트와 키네틱 아트의 핵심 인물이다. 그는 색을 단순히 회화의 구성 요소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실재’로 보았다. 이를 통해 관람자가 작품 앞에서 위치를 바꾸는 순간마다 시각 경험이 달라지는 동적 구조를 구축했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태어난 그는, 베네수엘라 미술학교(Escuela de Artes Plásticas y Aplicadas de Caracas)에서 회화를 전공한 뒤, 유럽에서 인상주의와 구조주의, 바우하우스 운동의 영향 아래 예술 언어를 정제했다. 특히 색의 지각에 대한 과학적 연구와 기술 실험을 통해, 단색의 조합이 아니라 ‘빛과 색의 진동’을 드러내는 시각적 장치를 설계했다.
대표작인 ‘Physichromie’(1959–) 시리즈는 색의 혼합이 아닌, 격자와 평행 구조, 반사면 등을 통해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색이 물리적으로 분리되고 합쳐지는 현상을 유도한다. 이는 회화가 더 이상 평면적 재현의 수단이 아닌, 시지각의 실험 장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색의 자율성과 시각의 상대성을 끊임없이 탐구하며, 공간, 시간, 감각의 개념을 해체하고 재조립했다.
크루즈 디에즈의 작업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 런던 테이트 모던, 파리 시립현대미술관, 퐁피두센터, 휴스턴 미술관, 퀸트의 발라프 리하르츠 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기관에 영구 소장되어 있으며, 베네수엘라, 프랑스, 스페인을 비롯한 여러 도시의 공공 공간에서도 그의 색채 설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색은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발생하는 하나의 사건”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철학은 그의 작품을 단순한 시각 장식이 아닌, ‘지각의 혁명’으로 위치시킨다.
크루즈 디에즈는 예술을 통해 감각의 구조를 재구성하며,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지점으로 이끈다. 그의 예술은 물질보다 빛, 대상보다 사건을 사유하게 하며, 색이라는 존재론적 경험을 우리 눈앞에 펼쳐놓는다.
◈ 최근 주요 활동

- 2025 – 《 Pom Pom Pidou. 현대 미술의 놀라운 이야기 》, 릴 트리포스탈, 프랑스 (Tripostal de Lille, France)
- 2024 – 《RGB, the Colors of the Century》, Hangaram Art Museum, 서울, 대한민국 (Hangaram Art Museum, Seoul Arts Center, Seoul, Korea)
- 2024 – 《Electric Dreams: Art And Technology Before The Internet》, 테이트 모던, 런던, 영국 (Tate Modern, London, United Kingdom)
2023년과 2024년은 카를로스 크루즈 디에즈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로, 전 세계 각지에서 대규모 회고전과 설치 프로젝트가 연이어 열렸다. 스페인 말라가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 Málaga)에서 개최된 개인전 《El color en movimiento》는 디에즈가 생전 탐구해온 색의 시간성, 운동성, 지각의 상대성에 대한 실험들을 총망라한 회고전으로, 그의 1950년대 초기 회화부터 말년의 몰입형 설치까지를 아우르며 색을 ‘고정된 물성’이 아닌 ‘변화하는 사건’으로 재정의한 예술적 여정을 입체적으로 조망했다.
이어서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순회 전시 《RGB, the Colors of the Century》가 개최되며 아시아권 관람자에게 디에즈의 핵심 개념인 ‘빛과 색의 자율성’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 전시는 단순히 대표작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색을 매개로 한 동적 경험이 어떻게 감각의 구조를 전복시키는지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며, ‘색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라는 그의 철학을 현시대에 다시금 상기시켰다.
또한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 개최된 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통해 현대 사회와 미래를 사유하는 작업들을 선보이는 그룹전 《Electric Dreams》에 대표작 색상 간섭 환경(Chromointerferent Environment, 1974–2009)을 출품하였다. 이 작품으로 움직이는 투사 영상을 통해 색과 공간에 대한 인식을 교란시키며, 관람자에게 강렬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2025년, 프랑스 릴의 트리포스탈(Tripostal de Lille)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Pom Pom Pidou. 현대 미술의 놀라운 이야기》는 크루즈 디에즈의 색채 실험이 동시대 미술사 내에서 어떤 미학적 전환점을 만들었는지를 흥미롭고 유쾌한 방식으로 조망한다. 이 전시는 퐁피두 센터가 기획한 순회 기획전으로, 현대 미술의 경이로움과 감각적 자유를 주제로 하며, 크루즈 디에즈의 작품은 그 중심에서 ‘지각의 유희’와 ‘색의 자율성’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관객의 감각을 일깨운다.
이와 같은 전시들을 통해, 크루즈 디에즈의 작업은 사후에도 여전히 동시대적 감각과 연결되며, 색의 존재론에 대한 그의 급진적인 제안이 현대 예술, 건축, 디자인, 공공 공간까지 다양한 분야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여전히 색이라는 보편적 언어를 통해,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본다’는 행위 자체를 다시 묻는 예술가로 존재하고 있다.
◈ 대표 전시 및 활동 이력
- 2025 – 《 Pom Pom Pidou. 현대 미술의 놀라운 이야기 》, 릴 트리포스탈, 프랑스 (Tripostal de Lille, France)
- 2024 – 《RGB, the Colors of the Century》, Hangaram Art Museum, 서울, 대한민국 (Hangaram Art Museum, Seoul Arts Center, Seoul, Korea)
- 2024 – 《Electric Dreams: Art And Technology Before The Internet》, 테이트 모던, 런던, 영국 (Tate Modern, London, United Kingdom)
- 2024 – 《El color en movimiento》, Centre Pompidou Málaga, 말라가, 스페인 (Centre Pompidou Málaga, Malaga, Spain)
- 2024 – 《RGB, the Colors of the Century》, Hangaram Art Museum, 서울, 대한민국 (Hangaram Art Museum, Seoul Arts Center, Seoul, Korea)
- 2023 – 《Kinetic 1923–2023: Centenary Cruz‑Diez & Soto》, Galerie Wagner, 파리, 프랑스 (Galerie Wagner, Paris, France)
- 2023 – 《RGB, The Colors of the Century (Centenary)》, Rainbow Space, 상하이, 중국 (Shanghai, China)
- 2022 –《Chromosaturation》, Pérez Art Museum Miami, 마이애미, 미국 (Pérez Art Museum Miami, Miami, USA)
- 2019 –《Sur moderno: Journeys of Abstraction—The Patricia Phelps de Cisneros Gift》, 뉴욕현대미술관, 뉴욕, 미국 (MoMA,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USA)
1. Electric Dreams: Art And Technology Before The Internet (2024, Tate Modern)

카를로스 크루즈-디에즈는 2024년 테이트 모던에서 열린 대규모 기획전 《Electric Dreams: Art and Technology Before the Internet》의 주요 참여 작가 중 한 명으로, 빛과 색의 상호작용을 탐구한 몰입형 설치작품 〈색상 간섭 환경(Environnement Chromointerférente)〉을 통해 인간 지각의 경계를 다시 사유하도록 이끈다. 이 전시는 195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예술가들이 기술적 알레고리를 활용해 미래를 상상하고 감각적 현실을 구성한 실험들을 조명하며, 광학, 키네틱 아트, 초기 디지털 미디어 아트의 교차점을 탐색하는 자리다.
크루즈-디에즈의 작품은 전시 8호실에 배정되어, 하나의 방 전체를 압도하는 강렬한 색채의 간섭 구조로 관람자를 맞이한다. 움직이는 평행선이 공간을 가로질러 천장과 바닥, 벽, 그리고 전시물 위를 흐르며, 광학 패턴의 밀도와 간격은 관객의 위치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큐브와 구 형태의 구조물 위로 투사된 선의 흐름은 환각적인 시각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이는 관람객의 방향 감각과 색 인지 체계를 일시적으로 전복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작품의 초판은 1974년 35mm 필름 슬라이드 프로젝터를 활용해 설치되었으며,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선으로 칠한 백색 패널에 검은 선이 움직이며 투사되도록 구성되었다. 이 구조는 빛의 간섭 작용을 통해 실제 존재하지 않는 색조를 관람자의 눈에 출현시키는 것으로, '색은 물질이 아니라 사건'이라는 작가의 인식론적 실험을 실천한 예시이다. 테이트 모던에 전시된 버전은 크루즈-디에즈가 생전 아들인 카를로스 크루즈-델가도(Carlos Cruz Delgado)와 함께 개발한 디지털 알고리즘 기반 고해상도 영상 시스템을 통해 구현되었으며, 색의 조합과 선의 움직임이 훨씬 더 다채롭게 확장된 형태로 진화했다.

〈Environnement Chromointerférente〉는 단지 시각적 장관을 넘어, GRAV(시각적 예술 연구 그룹)의 실험 전통을 잇는 참여적 감각의 장치로서 기능한다. 관람자는 작품 속을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물리적으로 반응하고, 간섭하고, 감각적으로 공명한다. 크루즈-디에즈는 이를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감각의 상태"로 이해했으며, 예술이 지각의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색채라는 언어로 설득해냈다.
이 전시는 크루즈-디에즈의 철학을 가장 체계적이고 집약적으로 구현한 공간 중 하나로, 오늘날 미디어 아트와 몰입형 전시의 선구적 모델로 다시 평가받고 있다.
2. RGB, the Colors of the Century (2023-2024) - 작가 탄생 100주년 기념 순회 전시

《RGB, The Colors of the Century》는 카를로스 크루스-디에즈(Carlos Cruz-Diez)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퐁피두 센터 및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Musée National d'Art Moderne)과 협력하여 기획된 대규모 순회 전시다. 2014년 생전 작가 자신이 직접 큐레이션한 16점의 대표작과, 이를 구현하는 촉각 기반 디지털 시스템이 함께 구성되며, 물리적 운반 대신 전자 데이터를 통해 전 세계 각지에서 설치 가능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전시는 물질로서의 작품이 아닌, 지각적 경험의 ‘과정’을 중심에 둔 작가의 철학을 기술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독창적이다.
RGB라는 이름은 작가의 작업 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색채의 간섭과 공존’의 원리를 상징한다. 특히 빨강(R), 초록(G), 파랑(B)의 삼원색을 통해 크루스-디에즈는 색을 더 이상 물질적 속성으로 보지 않고, 시간 속에서 변형되고 생성되는 지각적 사건으로 전환시켰다. 전시작은 대부분 디지털 알고리즘을 통해 구현되며, 관람객은 촉각적 지지대를 통해 작품과 물리적으로 상호작용하게 된다. 이는 작품을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작동시키는’ 존재로서 관람자의 위치를 재배치한다.
2024년 이 전시는 서울(한가람미술관, 6월10월)을 시작으로, 브라질 벨렘(Centro Cultural Bienal das Amazônias, 5월9월), 코스타리카(Museo de Arte Costarricense, 6월9월), 과테말라(미라플로레스 박물관, 12월2025년 3월), 베네수엘라(카라카스, 8월2025년 1월), 상하이(레인보우 스페이스, 2023년2024년 초) 등에서 이어지며, 국경과 언어를 넘어 색의 지각을 매개로 한 감각적 네트워크를 구성해간다.

특히 서울 전시에서는 〈Environnement Chromointerférente〉(1974/2019)의 디지털 구현 버전이 함께 설치되어, RGB 프로젝트의 이론적 핵심이 되는 ‘색의 비물질성’을 보다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처럼 《RGB》 전시는 단순한 회고전이 아니라, 색채의 실험과 기술적 구현, 그리고 예술과 관람자의 새로운 관계를 제안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며, 카를로스 크루스-디에즈의 예술세계를 미래로 확장하는 상징적인 프로젝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수상 경력
- 1966 – 제3회 아메리카 미술 비엔날레 그랑프리 (Universidad Nacional de Córdoba, 아르헨티나)
- 1967 – IX 비엔날레 드 상파울루 국제 회화상 (São Paulo, 브라질)
- 1969 – 국제 회화제 2등상 (Festival International de Peinture, Cagnes‑sur‑Mer, 프랑스)
- 1971 – 베네수엘라 국립미술상 (Premio Nacional de Artes Plásticas)
- 1981 – 안드레스 벨로 훈장 1등급 (Orden Andrés Bello, Primera Clase)
- 2002 – 아르 테와 레트르 훈장(Commandeur de l’Ordre des Arts et des Lettres, 프랑스)
- 2008 – 아메리카스 소사이어티 금메달 (Gold Medal, Americas Society, 뉴욕)
- 2009 – AICA 상 (국제미술비평가협회상, AICA), Estampa 페어 최우수 작가상 (스페인, 마드리드)
- 2012 –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Ordre National de la Légion d’Honneur, 등급: Officer)
- 2015 – 터너 메달 (Turner Medal, City University, 런던)
- 2016 – 트레비아 국제상 (International Trebbia Award, 체코)
- 2017 – SCAD 디파인 아트 상 (SCAD deFINE ART Award, Savannah, 미국)
◈ 작가의 대표작
1. Environnement Chromointerférent (1974/2019)

《Environnement Chromointerférent》(1974/2019)는 카를로스 크루즈-디에즈(Carlos Cruz-Diez)가 구축한 빛의 조형 언어를 극대화한 몰입형 설치로, 색을 ‘재현’이 아닌 ‘지각의 사건’으로 제시한다. 이 작품은 1974년 파리에서 초연된 이후 지속적으로 재현되어 온 실험적 공간으로, 관람자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다차원의 색 공간을 구현한다.
작품의 핵심은 끊임없이 변주되는 빛의 간섭(interference)을 통해 색이 고정된 물성이 아닌, 시간과 공간 속에서 생성되는 사건임을 경험하게 하는 데 있다. 수직 방향의 다색 광선은 공간을 가득 채우며, 벽과 바닥, 구형 오브제 위에 투사되어 끊임없이 흐르고 뒤섞이는 색선의 패턴을 만들어낸다. 관람자는 이 속에서 자신이 움직일 때마다 전혀 다른 색조의 파장을 경험하며, 색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발생하는’ 것임을 지각한다.

《Environnement Chromointerférent》는 디에즈의 평생 주제였던 "색은 독립된 실재이며, 고정된 대상이 아니다"라는 개념을 실험적으로 구현한 대표작이다. 이 작품에서 색은 빛, 구조물, 그리고 관람자의 신체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되며, 관객은 그 안에서 지각의 주체가 아닌 색의 일부로 기능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체험을 넘어, 색이 지각 속에서 어떻게 출현하고 소멸하는지를 역동적으로 드러낸다.
《Environnement Chromointerférent》는 단지 색의 감상이나 조형의 영역을 넘어, "지각을 인식하는 방법 자체를 뒤흔드는 감각적 실험"이다. 카를로스 크루즈-디에즈는 이 작품을 통해 색을 물질화하지 않고도 실재하게 만드는, 20세기 후반 예술의 가장 급진적인 혁신 중 하나를 제시한다.
2. Transchromie (1965)

《Transchromie》는 색채의 감산적 조합을 시각적으로 탐색하는 카를로스 크루즈-디에즈(Carlos Cruz-Diez)의 실험적 설치 작품이다. 이 작업은 투명한 색 띠들이 서로 다른 거리와 각도로 중첩되며 구성되어 있는데, 관람자의 움직임과 시점, 주변 조명에 따라 색의 조합이 끊임없이 변주된다.
작품은 반투명 아크릴 판들로 이루어진 공간 구조물로, 각각의 판은 하나의 색을 가지며, 이들이 겹쳐지면서 새로운 색들이 생성된다. 이는 감산(Subtractive Color Mixing) 원리에 기반한 것으로, 빛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빼는 방식으로 색을 변화시킨다. 관람자는 이 구조 안을 걸으며 색의 ‘중첩’이 아니라 ‘감산’을 경험하고, 각 위치에서만 포착되는 고유한 색 조합과 공간 구성을 마주한다.
《Transchromie》는 ‘색 자체의 실재성’보다는 색이 지각 속에서 어떻게 생성되는지를 탐구한다. 투명한 색면들이 공간 안에서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그 효과는 비물질적인 색의 사건으로 발생한다. 이로써 작품은 고정된 조형물이 아니라,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새롭게 구성되고 해체되는 지각적 실험실로 기능한다.
특히 이 작업은 “색은 환경과 관람자에 의해 발생한다”는 디에즈의 핵심 철학을 반영하며, 관객을 단순한 감상자에서 색의 생성자이자 구성자로 전환시킨다. 《Transchromie》는 단지 시각적 자극에 그치지 않고, 시간·공간·신체가 교차하는 지각의 무대를 창조함으로써, 현대 미술에서 색채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마련한다.
◈ 작품 감상 포인트
1. 변화하는 색의 경험
- 관람자의 움직임, 조명, 시점에 따라 색이 끊임없이 변화하며, 그 결과 고정된 색이 아니라 "보는 순간마다 달라지는 색채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2. 관람자 참여를 통한 감각의 활성화
- 작품 주변을 걸으며 이동하거나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때 색과 형태가 변화하여, 관람자의 몸 움직임 자체가 작품의 일부분이 되는 구조를 가져 능동적인 체험을 유도한다.
3. 회화와 과학의 경계 실험
- 색을 ‘그리는 대상’이 아닌, ‘발생시키는 매체’로 바꾼 회화 혁신으로, 옵아트(Op Art)와 키네틱 아트(Kinetic Art)의 중추적인 흐름을 이끈다.

카를로스 크루즈 디에즈의 작품을 감상할 때 가장 중요한 관점은, 색채를 고정된 물리적 속성이 아닌 '시간 속에서 변하는 시각적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는 물감을 이용한 전통 회화 방식에서 벗어나, 색이 어떻게 ‘보이는가’에 집중하며 색채를 자율적인 요소로 다뤘다.
작품 앞에서 위치를 바꾸거나 빛의 조건이 달라질 때마다 색이 움직이고, 새롭게 생성되며, 때로는 소멸하는 듯한 시각적 효과가 나타난다. 이로 인해 관람자는 ‘고정된 색’을 보는 것이 아니라, 빛과 눈의 상호작용에 따라 변화하는 색채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마치 색 자체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주며, 작가는 이를 ‘색채의 탈물질화’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크루즈 디에즈의 작품은 단순히 ‘보는 대상’이 아니다. 관람자의 위치, 움직임, 심지어 머무는 시간에 따라 색채와 형태는 달라지므로, 작품은 매 순간 다르게 ‘생성’된다.
이러한 특성은 관람자에게 수동적인 감상자의 위치를 벗어나,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공동 창작자(co-creator)’의 역할을 부여한다. 작품은 벽에 걸려 있거나 바닥에 설치되어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작품은 그 앞에서 관람자가 움직이며 체험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따라서 크루즈 디에즈의 작업은 관람 행위 자체가 곧 창작의 일부가 되는 ‘시간 기반 예술’이라고 볼 수 있다.
카를로스 크루즈 디에즈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시각 지각이 얼마나 유동적이고 주관적인지를 탐구한다. 그의 설치물은 종종 밝은 형광색, 병렬적인 선, 반복된 패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눈의 피로를 유도하거나 잔상을 남기는 등의 효과를 일으킨다.
이러한 시각적 장치는 관람자에게 단순한 미적 쾌감 너머의 경험을 제공한다. 작품은 하나의 ‘지각 실험실’처럼 작동하며, 색과 빛의 관계, 공간과 움직임에 대한 인식을 깨우고, 우리가 ‘본다’고 생각했던 감각의 기제를 새롭게 느끼게 만든다.
특히 크루즈 디에즈의 대표 연작인 「Physichromie」 시리즈나 「Chromosaturation」 설치작품은, 색의 절대성과 객관성이라는 전제를 무너뜨리고, 시각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순간적인 감각인가를 상기시킨다.
크루즈 디에즈의 작품을 볼 때는 가능한 한 천천히, 다양한 각도와 거리에서 감상해보는 것이 좋다. 움직임을 멈추지 말고, 빛의 방향과 그림자까지 관찰해보며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색은 진짜 존재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떠올리면 그 순간 색채와 시각, 지각의 경계를 허무는 예술적 실험에 초대될 것이다.

카를로스 크루즈 디에즈는 20세기 후반 미술사 속에서 옵 아트(Optical Art)와 키네틱 아트(Kinetic Art)의 흐름을 대표하는 인물로, 빛과 색채의 관계를 탐구한 현대 시각예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빅토르 바자렐리, 제수 드메디치, 프랑수아 모를레 등과 더불어 유럽과 남미 키네틱 아트 운동을 이끌었고, 파리를 중심으로 국제적 활동을 펼치며 그 이론적·실천적 기초를 공고히 다졌다.
크루즈 디에즈는 현대미술이 감정의 표현에서 지각의 조건으로 이동하는 전환 지점에서, 색을 고정된 재현물이 아닌 현상적 경험으로 제시하며 회화의 정의 자체를 재구성했다. 그는 ‘색은 보는 방식에 따라 변화하는 현실이다’라는 명제를 일관되게 실험했고, 이를 통해 회화의 평면성과 조각의 물성을 모두 확장시킨 예술가로 기억된다.
그의 작품은 현재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뉴욕 현대미술관(MoMA), 파나마 현대미술관(MACP), 휴스턴 미술관(MFAH)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 및 공공 컬렉션에 영구 소장되어 있으며, 글로벌 아트마켓에서도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그의 설치 작품과 미디어 기반 작업은 전통 회화 시장의 틀을 넘어서며, 몰입형 체험 공간 및 미디어 아트와의 접속 지점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2019년 작고 이후, 그의 유산은 파리 소재의 아틀리에와 Cruz-Diez Art Foundation을 중심으로 보존·연구되고 있으며, 2024년부터 시작된 탄생 100주년 기념 순회 전시 《RGB, the Colors of the Century》는 그가 남긴 색채 이론과 예술적 유산을 세계적으로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크루즈 디에즈는 동시대 시각예술의 인식론적 전환을 이끈 조형 철학자로서, 감각적 체험의 정치학을 실현한 예술가이며, 물질 너머의 색을 사유하게 만든 동시대 미술사의 ‘빛의 사상가’로 남게 되었다.